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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AI가 글을 다 써주는 시대, 그래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2026-05-27 · 읽는 시간 21

펼쳐진 종이책 위에 흩어진 발광 입력 커서들 — AI 시대에 다시 손에 잡히는 책의 자리

어느 저녁 ChatGPT에 책 한 권의 요약을 시켰다. 5분 만에 정갈한 다섯 쪽이 돌아왔다. 핵심 주장이 잘 잡혀 있었고 챕터별 흐름도 군더더기 없었다. 그런데 그 다섯 쪽을 다 읽고 나서 묘한 헛헛함이 남았다. 그 책을 읽었다는 감각이 들지 않았다. 정보는 분명 손에 들어왔는데, 그 책이 나에게 무언가를 일으킨 흔적이 없었다.

이 글은 그 저녁의 헛헛함에서 시작된 작은 사유의 기록이다. AI가 요약·초안·해설까지 처리하는 일상이 도래했는데도 굳이 책을 펼치는 자리가 남는다면, 그 자리는 정보 습득보다 사고의 회로 쪽에 있다. 한국 성인 종합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로 떨어졌는데, 그 와중에 20대만 75.3%로 거꾸로 오른다는 데이터를 만나며 이 사유는 한층 흥미로워졌다.

미리 한 줄로 척추를 박아 두면 이렇다. AI 시대 독서의 진짜 분기점은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었느냐다.

38.5%의 최저점, 그리고 75.3%로 거꾸로 오르는 20대


문화체육관광부 2025 국민 독서실태조사(2026년 3월 발표)는 만 19세 이상 성인의 종합 독서율을 **38.5%**로 보고했다. 직전 2023년 조사의 43.0%에서 4.5%p가 더 빠진 수치로, 조사 시작 이후 역대 최저다. 성인 한 명이 1년에 읽은 책은 평균 2.4권. 한 달에 한 권은커녕 한 계절에 한 권도 되지 않는 셈이다.

이 평균 아래에는 불균질한 풍경이 깔려 있다. 60대 이상의 종합 독서율은 14.4%에 머물렀다. 월 소득 200만 원 이하 가구는 13.4%, 월 소득 500만 원 이상 가구는 56.1%. 한 사회 안에서 책을 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네 배 가까이 갈라져 있다. 격차의 원인은 이 글이 답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지만, "책 안 읽는 시대"라는 한 줄짜리 진단이 사실은 어떤 자리의 책 안 읽는 시대인지를 짚어 둘 필요는 있다.

그런데 같은 통계 안에 한 가지 거꾸로 가는 숫자가 있다. **20대 종합 독서율 75.3%, 30대 66.4%**다. 다른 연령대가 모두 빠지는 가운데 20대만 유일하게 오른다. 미국 성인의 12개월 독서율이 Pew Research의 2026년 4월 발표 기준 약 75% 수준이라는 점을 옆에 두고 보면, 한국의 20대만이 미국 성인 전체와 동급의 독서율을 보이고 있는 흥미로운 풍경이 된다.

배경에는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단어가 있다. Z세대가 책을 펴 들고 그 풍경을 SNS에 인증하는 문화다. 책꾸·필사 챌린지·독립서점 투어가 그 안에 있고, 2025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오른 데에는 20대 독자가 큰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매체마다 반복됐다. 진정성 없는 인증으로 보는 시선과, 읽기의 외부 동기가 내부 동기로 옮겨 가는 사다리로 보는 시선이 동시에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 단정하지는 않는다. 책을 펼친다고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펼치지 않으면 시작도 없다.

같은 조사 안에 한 가지 숫자가 더 있다. 20대의 전자책 독서율은 59.4%로, 종이책 독서율 45.1%를 앞질렀다. 이 한 줄은 챕터 4에서 다시 만난다. 종이와 화면이 우리의 읽기 회로에 같은 일을 하는지 다른 일을 하는지, 그 질문이 거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AI에 외주할 수 있는 독서와 외주할 수 없는 독서


다음으로 경계선을 하나 그어 본다. AI가 잘하는 독서와, AI가 못하는 독서. 이 둘이 같은 단어 안에 묶여 있어서 AI가 책을 다 대신해 준다는 인상이 쉽게 만들어진다. 실제로는 그 안쪽에서 한 칸이 분명히 갈라진다.

AI가 잘하는 자리는 요약·개요 정리·사실 추출·다른 책과의 교차 비교·어려운 개념의 평이한 재서술이다. ChatGPT에 어떤 책의 핵심 주장 다섯 가지를 뽑아 달라고 하면, 정직한 책일수록 정직한 요약이 돌아온다. 모티머 애들러(Mortimer Adler)의 4단계 독서법 용어를 빌리면 이 자리는 훑어보기(Inspectional reading)에 해당한다. 책의 구조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 책이 무엇에 관한 책인지 한 문단으로 답하는 능력. 이 자리에서는 AI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고 자주 더 정확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 박사가 시사IN 2025년 7월 22일 인터뷰에서 한 한 줄이 그 경계선을 정확히 그어 준다.

자신의 경험에 대입해서 비판적으로 혹은 공감하면서 읽기, 상상하거나 예측하면서 읽기, 이런 부분은 인공지능에 외주를 줄 수 없다.

— 김성우, 시사IN 2025.07.22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한 가지를 더 적었다. 정보가 나에게 체화되려면 꼼꼼히 읽고, 메모도 해 보고, 요약도 하고, 자기 언어로 옮겨 봐야 한다. 흥미로운 비대칭이 보인다. 요약은 AI가 잘하는 일이라고 방금 적었는데, 김성우는 내가 요약해 봐야 체화가 된다고 말한다. 모순이 아니다. AI가 만든 요약을 받아 보는 것과 내가 직접 한 단락씩 자기 언어로 옮겨 보는 것은 결과물의 형태만 비슷하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인지의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정보를 받는 일이고, 후자는 인지를 짓는 일이다.

한국경제 김동욱 칼럼(2025년 8월 14일)이 같은 자리에 다른 각도의 한 문장을 보탠다.

데이터베이스는 아무리 방대해도 과거의 기록일 뿐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 김동욱, 한국경제 2025.08.14

AI가 처리하는 텍스트의 총량은 인간이 평생 읽을 수 있는 분량을 이미 한참 넘어선다. 그러나 그 모든 분량은 이미 쓰인 글들의 평균과 합이다. AI의 출력은 그 평균에서 통계적으로 가까운 자리로 떨어진다. 반면 한 사람이 자기 경험에 대입해서 읽고 자기 미래에 비추어서 읽는 자리는 그 평균 안에 없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예측에 가깝다. 외주 불가능의 자리가 거기다.

인지 외주의 비용 — MIT와 Microsoft가 가리키는 잠정적 자리


여기서 한 가지를 미리 적어 둬야 한다. 이 챕터의 두 연구는 둘 다 예비 결과다. 하나는 비심사 단계의 preprint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보고 설문이다. 어느 쪽도 "AI를 쓰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단정으로 옮겨 가서는 안 된다. 다만 두 연구가 같이 가리키는 방향은 한 번 짚을 가치가 있다.

첫 번째는 MIT 미디어랩의 Your Brain on ChatGPT다. 나탈리야 코스미나(Nataliya Kos'myna) 등이 arXiv:2506.08872로 2025년 6월에 공개한 preprint로, 2026년 5월 현재 동료심사가 완료되지 않은 잠정 단계다. 연구진은 보스턴 지역 대학생 54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4개월 동안 SAT 스타일의 에세이를 쓰게 했다. 한 그룹은 ChatGPT만, 한 그룹은 구글 검색만, 한 그룹은 어떤 도구도 쓰지 않았다. 32채널 EEG로 작성 중의 뇌 활성을 측정한 결과, LLM 그룹의 뇌 연결성은 도구 없음 그룹 대비 최대 55% 낮았다. 인지 부담이 큰 영역들이 서로 덜 함께 작동했다는 뜻이다. 또 LLM 그룹의 83%가 자신이 방금 쓴 에세이의 한 줄도 인용하지 못했다. 자기 글에 대한 기억과 소유감이 결여돼 있었다.

연구진은 한 단계를 더 두었다. 처음 ChatGPT를 쓰던 그룹에게 이후 도구 없이 쓰게 했더니 뇌 연결성이 일부 회복됐지만, 처음부터 도구 없이 쓴 그룹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여기에 **cognitive debt(인지 부채)**라는 단어를 붙였다. 외주된 인지의 자리에는 이자가 붙는다는 가설이다.

이 결과를 그대로 "AI는 뇌를 망친다"로 옮기면 안 되는 이유들을 Scientific American 2025년 7월 기사가 차분히 정리해 두었다. 표본이 54명으로 작고, 보스턴 지역 대학생에 한정돼 있고, EEG 연결성 지표가 곧 인지 능력과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고, 4개월은 학습이 누적되기에 짧고, 비심사 단계라 동료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 이 단서들을 다 붙이고 나서야 이 연구는 한 방향성을 가리킨다 — AI에 인지를 외주하는 자리에 어떤 비용이 누적될 수 있는 가능성. "있다"가 아니라 "수 있다"가 정확한 자리다.

두 번째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와 카네기멜런 대학의 공동 연구 The Impact of Generative AI on Critical Thinking이다. 하오핑 리(Hao-Ping "Hank" Lee) 등이 CHI 2025에 발표한 논문(ACM DL)으로, 주 1회 이상 GenAI를 쓰는 지식 노동자 3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기보고 설문이다. 자기보고와 상관관계라는 한계를 먼저 깔고 결과를 본다.

세 가지 발견이 있었다.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 빈도와 노력은 감소했다.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는 증가했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GenAI 사용으로 지각된 노력이 줄었다고 보고했지만, 결과물의 다양성도 함께 줄어드는 균질화(homogenization)에 대한 우려를 연구진이 따로 적어 두었다.

두 번째 발견이 한 번 더 흥미롭다. 같은 한 사람이 AI를 더 믿을 때와 자기를 더 믿을 때에 비판적 사고의 방향이 정반대로 움직인다. 이 결과는 "AI가 비판적 사고를 빼앗는다"는 인과 진술과는 다르다. AI를 어떤 자세로 사용하느냐가 비판적 사고에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그림이다. 외주의 자세와 대화의 자세가 같은 도구를 쓰는 같은 사람의 인지에 다른 효과를 낸다.

두 연구를 옆에 놓고 한 줄로 옮기면 이렇다. AI에 인지를 외주하는 자리에는 측정 가능한 비용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있고, 그 비용의 크기는 사용자가 어떤 자세로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단정이 아니라 방향이다.

깊이 읽기 회로 — Maryanne Wolf, 그리고 종이와 화면


AI 시대의 독서를 묻기 전에 한 단계 앞선 질문이 있다. 디지털 시대의 읽기가 우리의 뇌에 무엇을 했는가. 인지신경과학자 메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이 질문에 가장 오래, 가장 침착하게 답해 온 학자다. 그의 2018년 책 Reader, Come Home: The Reading Brain in a Digital World가 그 답을 한 권에 모은 보고서다.

울프의 핵심 개념은 **깊이 읽기(deep reading)**다. 분석·추론·반추·공감을 동시에 동원하는 느리고 인지 부담이 큰 과정. 책을 한 페이지 읽는 사이 우리의 뇌는 단어를 해독하고, 문장의 논리를 따라가고, 다음 장면을 예측하고, 인물의 처지에 자기를 비춰 본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자리가 깊이 읽기다. 울프가 UCLA SEIS 인터뷰에서 적은 한 줄이 이 개념의 사회적 무게를 짧게 압축한다.

깊이 읽기는 공감과 비판적 사고에 도달하는 핵심 통로이며, 어린 사람들이 진실을 허위·왜곡 정보로부터 가려내는 가장 좋은 도구 중 하나다. (Deep reading is a key vehicle for attaining empathy and critical thinking, one of the best tools for the young to discern the truth from misinformation and disinformation.)

— Maryanne Wolf, UCLA SEIS 인터뷰

두 번째 개념은 **인지적 인내(cognitive patience)**다. 어떤 책에 잠겨 한 시간을 머무를 수 있는 능력. 한 문장이 어려워도 다음 문장을 기다릴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은 책을 읽으며 길러지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먼저 잃는 능력이라는 것이 울프의 진단이다. eye tracking 연구들이 자주 관찰한 패턴은 F 패턴과 Z 패턴이다. 첫 두세 줄은 가로로 읽고 그 뒤로는 왼쪽 가장자리만 세로로 훑어 내려가는 스킴(skim)의 모양. 스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스킴이 기본값이 되면 한 가지 무거운 결과가 따라온다.

울프가 spillover라 부르는 그 결과는 단순하다. 화면에서 스킴이 기본값이 된 뇌는 종이책을 펼쳤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읽기 시작한다. 책의 한 문장에서 한 시간 멈출 자세가 갖춰지지 않는다. 두 페이지를 읽고 손이 휴대폰으로 간다. 챕터 1에서 본 20대 전자책 독서율 59.4% > 종이책 독서율 45.1%라는 한 줄이 여기서 호응한다. 전자책으로 읽는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되, 전자책으로 깊이 읽기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그 자리에서 열린다.

이 질문에 직접 답을 시도한 가장 큰 데이터셋이 Delgado 2018 메타분석이다. 발렌시아 대학의 파블로 델가도(Pablo Delgado)와 동료들이 Educational Research Review 25권에 실은 Don't throw away your printed books54개 연구, 17만 명 이상, 2000~2017년의 데이터를 모았다.

세 가지 결과가 깔끔하게 나왔다. 첫째, 모든 연령대에서 종이가 화면보다 이해도가 높았다. 둘째, 이 격차는 설명·해설(expository) 텍스트에서 특히 뚜렷했고, 서사(narrative) 텍스트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책의 종류가 격차의 크기를 정한다. 셋째,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시간 변화에 있었다. 디지털 친숙도가 높아진 2010년대 이후의 연구에서 종이와 화면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 디지털에 익숙해질수록 종이에서의 이해 우위가 작아지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커진다는 결과다.

이 결과를 "종이책으로 돌아가라"는 단정으로 옮기면 너무 빠르다. 델가도 자신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짚은 자리는 읽기의 종류와 도구의 종류가 조용히 짝지어진다는 그림에 가깝다. 짧은 알림과 헤드라인을 빠르게 훑는 자리에서는 화면이 자연스럽고, 한 권의 책에 한 달을 머무르며 그 책이 일으키는 작은 균열을 받아들이려는 자리에서는 종이가 조금 더 유리하다.

울프 자신은 이 점을 biliterate brain이라는 단어로 옮겼다. 두 가지 읽기 회로를 다 갖춘 뇌. 종이에서 길러지는 깊이 읽기 회로와 디지털에서 길러지는 빠른 탐색 회로를 둘 다 갖춘 상태다. 그가 어린이 교육의 맥락에서 권장한 것은 종이 회로를 먼저 형성한 뒤 디지털을 도입하라는 순서였다. 어른에게는 그대로 처방으로 옮기기 어렵지만, 훈련 권장으로는 옮길 수 있다. 이미 디지털에 기울어 있는 어른의 읽기 회로에 종이의 시간을 한 칸 비워 두는 것. 챕터 3의 cognitive debt와 이 챕터의 cognitive patience가 단어 결로 가까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쪽은 외주의 비용을, 한쪽은 그 비용을 만들지 않는 능력을 가리킨다.

다독 vs 정독 — 박웅현, 애들러, 그리고 Naval


여기까지의 풍경을 정리해 본다. AI는 책의 훑어보기를 거의 무료로 해 줄 수 있지만, 책이 나에게 일으키는 균열은 외주가 불가능하다. 인지 외주에는 측정 가능한 비용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있고, 종이의 깊이 읽기 회로는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먼저 잃는 능력 중 하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세 사람의 독서관을 겹쳐 본다.

먼저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다. 한국에서 다독 콤플렉스 — 몇 권 읽었느냐에 자기 가치를 매다는 습관 — 를 가장 일찍 정면으로 비판한 책 중 하나다. 그는 "꾹꾹 눌러 읽기"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한 권을 읽었다 → 읽었다 → 읽었다로 쌓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을 느리게 깊게 자기 안의 무엇인가가 깨질 만큼 읽는 자세다. 그가 책의 제목으로 빌려 온 카프카의 한 줄이 그 자세를 가장 짧게 그린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프란츠 카프카 (박웅현 『책은 도끼다』 인용)

도끼는 몇 자루가 아니라 한 자루면 된다. 그 한 자루가 정확히 얼어 있는 자리를 내려치면 된다.

두 번째로 모티머 애들러와 찰스 반 도렌(Charles Van Doren)의 How to Read a Book이다. 1940년 초판, 1972년 개정판이 나온 이 오래된 책의 4단계 독서법은 AI 시대에 의외로 깔끔하게 적용된다.

  1. Elementary — 글자 해독.
  2. Inspectional — 훑어보기. 이 책이 무엇에 관한 책인지, 어떤 구조인지를 빠르게 파악.
  3. Analytical — 분석적 읽기. 책의 구조를 따라 들어가 해석하고 비평하는 단계.
  4. Syntopical — 여러 책을 한 주제로 묶어 종합하는 단계.

Inspectional 단계는 AI가 압도적으로 잘하는 자리다. Syntopical도 AI가 강한 자리다. 다섯 권의 책을 같은 주제로 비교해 달라고 하면 ChatGPT는 빠르게 표를 그려 준다. 남는 자리는 Analytical, 그 가운데서도 비평 부분이다. 단순한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신념과 시간에 비추어 이 책의 주장이 어디에서 어긋나고 어디에서 마음에 맞는가를 짚는 자리. 김성우의 인용이 이 자리와 정확히 겹친다. 자기 경험에 대입해서 비판적·공감적으로 읽는 자리, 상상하고 예측하며 읽는 자리. AI가 들어가지 못하는 자리다.

세 번째는 Naval Ravikant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그의 Almanack에서 가장 자주 옮겨지는 한 줄은 이런 결이다 — 100권의 위대한 책을 거듭 읽는 편이, 모든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낫다. 그는 또 흥미 없는 책은 건너뛰라고 강조한다. 의무로 읽는 책에서는 깊이 읽기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 책보다 고전과 원전을 권하는 결도 같은 맥락이다.

Naval의 발언 자체는 AI 시대를 명시적으로 다룬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함의는 AI 시대에 한 칸 더 또렷해진다. AI가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를 거의 무한히 모방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는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었느냐" 쪽으로 옮겨 간다. 100권을 한 번씩 읽고 그 100권을 다 외주된 요약으로 가진 사람과, 한 권을 다섯 번 읽고 그 한 권을 자기 언어로 다시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챕터 3의 두 연구가 가리킨 깊이는 후자 쪽에 누적된다.

세 사람을 한 줄로 묶으면 이렇다. 다독은 AI로 외주 가능하다. 정독은 외주 불가능하다. AI는 책 100권의 핵심 주장을 5분 안에 정리해 줄 수 있지만, 그 가운데 한 권이 나에게 일으키는 작은 균열은 외주가 불가능하다. 그 균열의 자리가 어쩌면 AI 시대에 책을 펼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된다.

마무리


처음의 그 저녁으로 돌아간다. ChatGPT가 5분 만에 정리해 준 다섯 쪽짜리 요약과, 그 요약을 다 읽고도 읽었다는 감각이 들지 않던 묘한 헛헛함. 이 글을 다 쓴 지금 그 헛헛함의 정체가 조금 더 또렷해진다. 받은 것은 정보였고, 비어 있던 것은 나와 그 책 사이의 작은 마찰이었다. 그 마찰이 없으면 책은 읽혀지지 않는다. 다섯 쪽이든 5백 쪽이든 마찬가지다.

이 글은 한 가지 단정을 내내 피하려 애썼다. AI를 쓰면 안 된다도, 책을 읽어야만 한다도 단정의 자리에 두지 않았다. 챕터 3에서 본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가 줄어든다"는 발견은, 같은 자리에서 책에 대한 무비판적 신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책을 읽기만 하면 깊어진다는 단정 또한 이 글이 경계한 자리다.

남는 한 줄을 적어 두면 이렇다. AI 시대의 독서는 "책을 다 읽었다"가 아니라 "이 책이 나에게 어떤 균열을 일으켰다"를 셀 수 있는 사람의 활동으로 옮겨 간다. 다독은 AI로 외주 가능하다. 정독은 외주 불가능하다. 그 외주 불가능의 자리에 나라는 한 사람의 시간이 들어간다. 그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읽었다라는 단어로 부르는 그 무엇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만 남겨 둔다. 지금 책장에 읽지 않은 새 책과 한 번 읽었지만 다시 펼쳐 본 적 없는 책이 같이 꽂혀 있다고 하자. 둘 중 어느 책에 손이 가는가. 그 답이 이 글의 답일 수 있다. AI가 새 책의 요약을 5분 만에 정갈하게 정리해 줄 수 있는 시대에, 이미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치는 자리만큼 외주가 불가능한 자리는 없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