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더 친절할까 - 익명성과 인간 행동
2026-05-27 · 읽는 시간 15분
만원 지하철에서 누군가 가방 밖으로 떨어뜨린 카드를 모르는 사람이 주워서 건넨다. 비 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 한쪽을 잠깐 같이 쓰자고 권한다. 우리는 그 친절을 잠깐 받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곧 잊는다. 그래도 그날 하루의 톤이 미세하게 다르다.
같은 사람이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어느 뉴스 기사의 댓글창을 연다. 익명 닉네임 뒤에 숨은 수백 줄의 욕설이 흐른다. 어쩌면 본인도 한 줄을 거든다. 다음 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한 번 더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할지 모른다.
이 글은 그 갈림을 들여다보는 작은 사유의 기록이다. 같은 익명이 한쪽에서는 친절을 풀어놓고 다른 쪽에서는 칼날을 풀어놓는다. 사회심리학의 오래된 실험들과 한국의 최근 통계를 겹쳐 놓고 천천히 따라가 본다. 결론을 단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 다르게 보는 방법은 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의 친절을 일관되게 과소평가한다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박아 두자. 인간은 낯선 이의 선의를 체계적으로 깎아 본다. 실측은 그 예측을 거의 두 배 웃돈다.
2025년 발표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5)**에는 잃어버린 지갑 실험이 다시 등장한다. 40개국 355개 도시에 약 17,000개의 지갑을 일부러 떨어뜨리고 반환률을 측정했다. 실제 반환율은 시민들이 예측한 수치의 약 1.8배였다. 토론토에서는 80%가 돌아왔는데, 이는 토론토 시민이 짐작한 수치의 약 3.5배였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 더 있다. 돈이 많이 든 지갑일수록 더 많이 반환됐다. 직관과 정반대다.
Believing in the kindness of strangers had a much bigger impact on happiness than previously thought, and it even had a bigger impact on happiness than actual or expected harm.
— World Happiness Report 2025
낯선 이의 친절을 믿는 정도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말이다. 실제 손해가 미치는 영향보다도 크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너무 의심하는 방향으로 기본값이 맞춰져 있고, 그 의심 자체가 행복을 깎아낸다.
친절을 베푸는 쪽도 자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시카고 대학의 닉 에플리(Nicholas Epley)와 아밋 쿠마르(Amit Kumar)는 추운 야외 스케이트장에서 행인에게 따뜻한 핫초코를 건넸다. 핫초코를 준 사람은 받은 사람의 기분을 매번 짐작했고, 그 짐작은 매번 실제보다 작았다. 같은 연구에서 한 가지가 더 관찰됐다. 친절을 받은 사람은 그 직후 다음 모르는 사람에게 더 많은 몫을 양보했다. 친절은 받은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연쇄된다. 그러나 처음 베푼 사람은 이 연쇄를 거의 예측하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한 한 사람은, 자기가 일으킨 잔물결이 그날 그 칸을 얼마나 멀리 흘러갔는지 모른 채 내린다. 익명이 풀어놓는 것 중 하나는 분명히 친절이다.
그런데 같은 익명이 댓글창에서는 정반대로 작동한다
우리는 익명이 만들어낸 다른 풍경도 너무 잘 안다. 어느 연예인의 부고 기사 아래 깔린 댓글 무더기, 평범한 시민의 이름이 갑자기 박제되는 밤, 한 줄의 농담이 수천 줄의 조롱으로 번지는 광경. 같은 익명에서 어떻게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가.
이 질문을 가장 정직하게 다룬 사람은 라이더 대학의 심리학자 존 술러(John Suler)였다. 그가 2004년 CyberPsychology & Behavior에 실은 「온라인 탈억제 효과(The Online Disinhibition Effect)」는 이후 20년 동안 사이버 심리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술러는 평소엔 안 하던 행동이 온라인에서 풀려나오는 메커니즘을 여섯 가지 요인으로 정리했다. 해리적 익명성("나는 내가 아니다"), 비가시성, 비동기성, 상대를 머릿속 캐릭터로 환원하는 유아론적 내사, 인터넷을 가상 무대로 인식하는 해리적 상상, 그리고 권위의 최소화.
술러의 가장 정직한 통찰은 그다음에 있다. 풀려나오는 것이 한 방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소엔 못 하던 자기 개방, 고민 털어놓기, 모르는 이에게 보내는 친절이 풀려나오는 쪽을 그는 benign disinhibition(이로운 탈억제)이라 불렀고, 욕설과 위협과 괴롭힘이 풀려나오는 쪽을 toxic disinhibition(해로운 탈억제)이라 불렀다. 같은 여섯 요인이 같은 사람 안에서 두 방향 모두를 풀어놓는다.
이 구분이 이 글 전체의 축이다. 익명은 인간의 본성을 폭로하는 거울이 아니라 풀어놓는 장치다. 풀려나오는 것이 친절이 될지 칼이 될지를 익명 그 자체가 결정하지 않는다. 익명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동안, 실제로 갈림을 만든 변수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고전 실험의 진짜 교훈 — 본성이 아니라 상황·권위
익명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통념은 종종 두 개의 고전 실험을 근거로 인용된다. 1971년 스탠퍼드 모의 감옥 실험과 1963년 밀그램의 복종 실험. 둘 다 교과서에 박혀 있고, 둘 다 "역할을 맡으면 사람이 잔인해진다"는 결론으로 자주 요약된다. 다만 두 실험은 그 사이에서 운명이 갈렸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살아남지 못했다. 2018년 프랑스 연구자 티보 르 텍시에(Thibault Le Texier)는 스탠퍼드 도서관에 보관된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원본 녹취와 메모를 정독해 『거짓의 역사(Histoire d'un mensonge)』를 출간했다.
The guards were asked directly to behave in certain ways in order to confirm Zimbardo's conclusions, which were largely written in advance of the experiment.
— Thibault Le Texier (2018)
요약하면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에게 사전 코칭이 주어졌고, 실험의 결론은 시작 전에 거의 작성되어 있었다. 가장 악명 높았던 교도관 데이브 에셜먼(David Eshelman)은 이후 자신이 연극 전공자로서 의도적으로 잔인한 간수를 연기했다고 증언했다. 잔인함은 역할에서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연기되었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이 운명을 따라가지 않았다. 1963년 원본에서 65%의 참가자가 최대 450V까지 전기 충격 레버를 눌렀다. 제리 버거(Jerry Burger)가 2009년 윤리 기준에 맞춰 150V에서 중단하는 부분 재현을 시도했을 때 70%가 그 지점까지 진행했고, 이는 밀그램 비교 조건(82.5%)과 사실상 동일했다. 2025년 Scientific Reports 추가 재현도 권위에 대한 복종 패턴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두 실험의 운명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한 가지다. 사람들이 잔인해지는 메커니즘은 익명도 역할도 아니다. 상황의 압력 + 권위의 지시다. 밀그램의 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가 "계속 진행하세요"라고 말할 때 참가자는 익명이 아니었다. 본명을 적은 동의서를 들고 있었다. 그래도 레버를 눌렀다. 잔인을 풀어놓은 것은 익명이 아니라 책임이 위에 있다는 인식이었다.
이 통찰을 댓글창 위에 얹어 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사이버 렉카가 "이 사람은 맞아도 싸다"는 프레임을 깔면, 그 영상 아래 모이는 익명 댓글러는 그 프레임의 권위 아래로 들어간다. 댓글창은 밀그램의 옷을 입은 익명 무대다.
한국의 두 얼굴 — 26년의 천사와 29만 개의 악플
이 양면이 가장 선명하게 펼쳐지는 무대가 어쩌면 한국이다. 같은 사회가 매년 천사를 만들고 매일 칼을 만든다.
전라북도 전주 노송동에는 얼굴 없는 천사라 불리는 이가 있다. 2000년 겨울 처음 시작되어 2025년 12월까지 26년 연속 매년 연말 익명으로 기부금을 두고 사라진다. 누적 금액은 약 11억 원에 달한다. 전주시는 그를 기려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했다. 노송동 주민센터의 한 관계자는 "천사가 다녀가고 나면 30~50건의 추가 기부가 따라온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익명 친절이 챕터 1의 연쇄 효과를 그대로 재현한다.
이 그림 옆에 다른 그림이 놓인다.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2023년 한 연구는 익명 유튜버 4명의 채널 영상 370건과 그 아래 달린 댓글 약 29만 건을 인공신경망으로 분류 분석했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채널이 신원이 공개된 채널보다 악성 댓글을 유의미하게 더 많이 생산했다. 연구진이 짚은 메커니즘은 익명성, 채널 내부의 규범 동조, 혐오의 반향실 효과 세 가지의 결합이었다. 익명 그 자체가 단독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익명 위에 깔린 두 변수가 결합할 때 비로소 악플이 폭발했다. 챕터 3의 밀그램과 정확히 호응한다.
악성 댓글 사용자의 50% 이상이 자신의 행동을 악성 댓글로 인식하지 못하고, 쓴 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2010)
절반 이상이 자기 행동을 그것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술러의 유아론적 내사가 정확히 이 자리다. 화면 너머의 대상이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굴리는 캐릭터로 환원되었기 때문이다. 캐릭터에게는 무엇을 해도 죄책감이 일지 않는다. 한 가지 데이터를 더 얹는다. 보험연구원의 2020년 16개국 비교에서 한국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4점 만점에 2.02점(10위), 아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3.13점이었다. 안과 밖의 격차가 1점이 넘는다. 그런데 그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 노송동의 천사가 26년째 다녀간다.
친밀할수록 잔인해지는 역설 — 거울로서의 Goffman
여기까지의 그림은 익명이 친절을 풀어놓을 수도 칼을 풀어놓을 수도 있는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 옆에 한 장면을 더 놓아야 글이 완성된다. 익명일 때보다 친밀할 때 사람이 더 잔인해지는 자리.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1956년 『일상에서의 자기 연출(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에서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극에 비유했다. 우리는 무대 위(front stage)에서 인상 관리에 들어가고, 무대 뒤(back stage)인 집과 가족과 연인 앞에서는 가면을 내린다. 그가 짚은 핵심은 이것이다. 가면이 내려간 자리에서 친절도 멈추고, 평소엔 누르고 있던 폭력성도 풀려난다.
여기서 한 가지가 비틀린다. 우리는 흔히 익명에서 잔인이 풀려나온다고 생각하지만, 더 정확한 그림은 연기를 그만두는 자리에서 잔인이 풀려나온다는 쪽일 수 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무대 위에 있다. 친절을 연기한다. 친밀한 사람 앞에서 우리는 무대 뒤로 들어간다.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자리는 익명의 댓글창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옆자리일지 모른다.
한국 통계가 이 그림을 차갑게 받아낸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는 2020년 49,225건에서 2023년 77,150건으로 늘어, 3년 만에 약 57% 증가했다. 한국여성의전화 2024년 초기상담 중 친밀한 관계(전 배우자·전 애인 포함) 폭력은 52.8%(3,626건)였다. 가정폭력 신고 대비 검거율은 19.29%, 교제폭력 검거율은 3년째 10%를 밑돈다. 친밀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더 자주 일어나고 더 자주 처벌받지 않는다.
여기에 외로움의 풍경을 한 장 얹는다. 통계청의 『2024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36.1%까지 늘었고, 그 가운데 48.9%가 평소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는 19세 이상 국민의 3명 중 1명이 도움이 필요해도 받을 곳이 없다고 보고했다. 친밀한 무대가 사라지면 back stage도 사라진다. 가면을 벗을 자리가 없는 사람의 피로가 어느 댓글창에서 풀려날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의 두 장면으로 돌아가 본다. 만원 지하철에서 카드를 주워 건넨 사람과 그날 밤 댓글창에서 한 줄을 거든 사람은 같은 사람일 수 있다. 어쩌면 자주 같은 사람이다. 그를 친절하다고도 잔인하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그가 무엇을 풀어놓느냐는 그 순간 그가 어느 자리에 있었느냐에 더 가깝다.
이 글에서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면 이것이다. 익명은 본성을 드러내는 거울이 아니라 평소엔 누르고 있던 것을 풀어놓는 장치다. 풀려나오는 것이 친절일지 칼일지는 익명이 결정하지 않는다. 그 순간 어떤 권위가 위에 깔려 있는지, 어떤 동조가 옆에 있는지, 어떤 거리가 상대와 나 사이에 있는지가 갈림을 만든다.
이 그림은 마지막 한 번 더 뒤집힌다. 가장 어려운 윤리적 시험은 익명일 때가 아닐 수 있다. 가면이 벗겨진 자리, 즉 가장 친밀한 자리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남는가. 모르는 사람을 향한 친절은 우리가 짐작한 것보다 자주 일어난다. 가까운 사람을 향한 폭력도 우리가 짐작한 것보다 자주 일어난다. 두 통계를 같이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나는 어느 거리에서 가장 나다운가. 그리고 오늘 당신이 누군가에게 내린 친절과 어딘가에 내린 칼이 있다면, 그 둘이 각각 어느 거리에서 풀려나왔는지를 한 번 들여다보는 일. 그 거리를 의식하는 자리에서 다음 한 줄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참고
- World Happiness Report 2025 — Berkeley Greater Good 해설
- Do You Underestimate the Impact of Being Kind? (Epley & Kumar) — Berkeley Greater Good
- The Online Disinhibition Effect (John Suler, 2004) — CyberPsychology & Behavior via DOI
- Online Disinhibition Effect — Wikipedia
- Stanford Prison Experiment — Wikipedia
- The infamous Stanford Prison Experiment was flawed — The Conversation
- Thibault Le Texier, Histoire d'un mensonge (2018) — debunking paper
- Milgram experiment — Wikipedia
- Burger 2009 replication discussion — The British Psychological Society
- Doubting the power of prestige (2025) — Scientific Reports
- 전주 얼굴 없는 천사 — 한국일보 2025.12
- 전주 얼굴 없는 천사 — 서울신문 2025.12
- 사이버 렉카 악성 댓글 연구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2023) — DBpia
- 보험연구원, 『사회적 신뢰의 국가 간 비교』(2020)
-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Erving Goffman, 1956) — Wikipedia
- Impression Management — Simply Psychology
- 교제폭력 신고 2020~2023년 57% 증가 — 서울신문 2024.05.09
- 한국여성의전화 2024 상담통계
- 통계청, 『2024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 보건복지부,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 hero 이미지: 실제 제품 사진이 아닌 AI 생성 추상 일러스트 (Google Imagen 4)